취향의 프리퀄

클래식을 처음 좋아하게 되었을 때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4학년 음악 시간, 하이든의 시계 교향곡과 놀람 교향곡을 듣고 어린 나이에 그 정교함과 풍부함, 강한 박자와 큰 볼륨으로 연주함에도 불구하고 모서리가 뾰족하지 않은 곡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었다.
취향은 다소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정해지거나 바뀌곤 하는데, 돌이켜 보면 첫 분기점은 이 음악 시간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이 용돈을 모으고 모아 클래식 모음집을 카세트테이프로 샀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귀에 쟁쟁한 곡은 케텔비(Albert W. Ketelbey)의 "페르시아 시장에서(In a Persian Market)"라는 곡인데, 도입부는 상인을 태운 낙타 무리가 상품을 가득 싣고 사막을 걸어오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뒤에 이어지는 부분은 낮을 활기차게 했던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잔잔히 석양이 지는 모습을,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에는 상점마다 휘황한 등을 걸고 야시장을 열어 다시금 손님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린 나이에는 이렇게 직관적인 곡이 훨씬 재밌고 상상을 마음껏 자극해 준 것 같은데,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들으니 은유가 적은 곡이라, 추억을 피워 올리는 것 말고는 오래 음미할 거리가 많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다음은 음악의 아버지 바흐(J.S. Bach)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BWV 1068) 중 두 번째 곡인 '아리아(Air)'인데, 우리에게는 G선상의 아리아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곡은 후대에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현인 G선(G string)만 사용해도 연주할 수 있게 편곡되었고, 그 편곡 지시문이 그대로 곡의 별칭이 되어 버린 사례라고 한다.
카세트 테이프에는 한글로 "지선상의 아리아"라고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초등학교 4학년은 이걸 "지상선의 아리아"로 잘못 읽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고요하고 경건한 음악을 눈을 감고 들으면서 지평선을 떠올려 보려고 애썼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클래식을 사랑하게 된 습관, 정서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십 대에 European Jazz Trio의 Adagio 앨범을 만나면서 중요한 분기점을 또 한 번 맞게 된다. 이 앨범은 유명한 클래식 곡들을 재즈로 편곡한 것인데, 클래식을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낮에 보던, 광대하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평온한 바다가 해 질 무렵 까치놀을 수면 위에 띄우고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을 본 느낌이었다. 그동안 몰랐던 바다의 이면이었다. 바다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스무 살이 갓 넘은 학생은 그 학생다운 호기심으로 이곳저곳을 거닐어 보다가 변주된 장면을 발견하고는 마음에 담아 둔다. 이 변주된 장면이 Jacques Loussier의 Air on the G String이다. Adagio 앨범의 같은 곡과 구성을 달리하고 있는데, 원곡의 뒷부분을 앞으로 끌어와 먼저 들려준 뒤 앞부분으로 이어 간다. 그리고 원곡의 지속되는 통주저음을 4분음표를 활용하여 walking bass로 바꾸는 방식을 택한다. 바닷가를 걷는 걸음걸이가 바뀌는 것이다. 그러고는 원곡에는 없는 브러시로 해변의 질감을 살려낸다.

Jacques Loussier Trio - Air on the G String|360

재즈 연주로서 흥미로운 부분은 원곡의 서스펜션을 다루는 방식인데, 클래식은 이 서스펜션을 '불협이니 반드시 해결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실제로도 해결하고 있지만 Loussier는 해결하기도 했다가 내버려 두기도 했다가 하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곡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한 긴장을 느끼다가도, 어느새 곡이 그 상태로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듯한, 화음적으로 풍부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잘 알려져 있는 대중가요, 팝송, 클래식을 재즈로 편곡한 곡을 들을 때, 원곡의 완결성이 잠시 해체되고 애매하게 떠 있는 느낌을 받는다면 재즈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화음은 끝내 어디에도 내려앉지 않고 수평선 위에 떠 있다. 4학년짜리 꼬마가 눈을 감고 애써 그리던 그 지상선이, 어쩌면 이런 모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Swing Company 글 더 보기